어선원 이주노동자들과 함께 하는 아름다운 연대

설날, 몇몇 어선원 이주노동자들이 민주노총 경주지부 부설 경주이주노동자센터에 모여들었다. 아침 일찍부터 서둘렀지만 버스는 드문드문 왔고, 명절을 맞은 도로는 부산했다. 이주노동자들은 느릿느릿 기어가는 버스 안에서 연신 조급해지는 마음을 추슬렀다. 같은 선사에서 일하는 동료들이 여러 달 째 임금을 제대로 받지 못하고 있었다. 노동자들이 계산한 체불임금 총액만 억 단위를 훌쩍 넘어섰다.

그나마 하루를 온전히 쉴 수 있는 오늘을 얼마나 손꼽아 기다렸는지 모른다. 어선원 이주노동자들에게는 정해진 휴일이 없다. 선원법과 근로기준법 상의 근로시간, 휴게, 휴일 등 최소한의 노동조건에 대한 규정은 어선원에게는 적용되지 않기 때문이다. 휴일 없는 장시간의 고된 노동은 힘들기도 했지만, 무슨 문제가 생겨도 어디 가서 호소할 시간이 없게 만들었다. 그래서 어선원 이주노동자들은 배에서 도망쳐 나와서 미등록 체류자가 된 후에야 센터를 찾곤 했다. 뱃일을 계속 하면서 체불임금 받겠다고 덤비는 경우 자체가 드문 일이었다.

오후가 지나서야 센터에 도착한 노동자들은 머리를 맞대고 앉아서 자신과 동료들의 체불임금을 계산하기 시작했다. 20톤 이상 어선에서 일하는 이들의 임금 계산은 간단하다. 노동시간에 대한 법적 보호가 없기 때문에 일단 연장수당이니 초과근로수당이니 하는 게 없다. 얼마를 일했든 최저임금이 월정액으로 정해져 있다. 한국인 선원의 최저임금은 해수부 장관이 매년 고시를 한다. 그런데 희한하게도 ‘외국인 선원’ 최저임금은 이주노동자는 조합원으로 받지도 않는 노동조합과 사측 간 단체협약에서 정하도록 했다. 그렇게 해상노련과 수협이 정한 ‘외국인 선원’의 최저임금은 매년 한국인 선원의 70~80% 수준이다. 2020년 한국인 선원은 2,215,960원, ‘외국인 선원’은 육상 근로자 최저임금의 96%로 정해 1,723,500원이다. 한국인 선원은 최저임금에 어획량에 따라 정해지는 일종의 성과급인 보합제 임금을 더해서 받지만 이주노동자는 대부분 최저임금만 받는다.

그런데 간단한 임금계산이 간단하게 끝나지 않았다. 줄곧 어장막에서 일한 노동자들이 많았기 때문이다. 배에서 잡은 수산물을 가공하는 어장막은 근로기준법과 최저임금법 적용을 받는 육상노동이다. 이주노동자들을 어선원으로 데려와서 육상 일을 시키고 ‘외국인 선원’ 최저임금만 주는 편법은 흔한 관행이다. 어장막에서 일한 노동자들은 하루 14시간 이상씩 일을 했다. 사실상 휴일이 거의 없었지만 휴식과 휴일을 최대한 쳐서 육상 노동자의 최저임금으로 체불임금을 다시 계산하니 노동자들이 원래 계산했던 금액의 네다섯 배가 되었다.

센터의 한쪽 벽에는 “여기는 이주노동자와의 아름다운 연대를 만들어가는 경주이주노동자센터입니다”라고 적힌 플래카드가 걸려 있다. 늦은 밤, 어선원 이주노동자들과 센터 활동가와 설날 휴일을 반납하고 달려온 통역 활동가와 지역의 이주노동자 공동체 대표들이 그 앞에서 주먹을 불끈 쥐었다. 노동자들은 선사뿐 아니라 본국의 인력 송출업체와 한국의 관리업체로부터 가해질 압박을 견뎌내야 한다. 배를 타고 먼 바다로 나가면 아무도 그들을 도울 수 없다. 송출업체는 본국의 가족들을 협박할 것이다. 노동자들은 입국 전에 송출업체에 수백만 원에서 천만 원 가까이 이탈보증금을 내고 한국에 배를 타러 왔다. 집문서, 땅문서, 오토바이와 학위증까지 담보로 맡긴 노동자들도 있었다. 까딱 잘못되면 이 모두를 잃을 수도 있다. 매월 삼사만원씩 관리비에 온갖 수수료를 꼬박꼬박 챙겨가면서 임금체불은 나 몰라라 하는 한국에 관리업체도 가만있지 않을 것이다. 한국으로 보내는 노동자 쿼터가 줄어들까 노심초사하는 본국 정부와 대사관이 그들 편에 서 주리라 기대하기도 어렵다.

그러나 이 부조리한 상황에 맞서기 위해 누군가 나서야 했다. 노동자의 권리 쟁취를 위해 일하는 진짜 노동조합이, 연대만이 살길이라 믿는 한국인 노동자들이, 더 이상 노예로 살아갈 수 없다고 생각하는 이주노동자들이 그들과 함께 하리라 믿으며, 어선원 이주노동자들은 오그라드는 가슴을 좍좍 펴며 다시 일터로 돌아갔다.

이 글은 전국금속노동조합 공단노동자신문 <바지락> 2020년 2/3월 통합호에 실렸던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