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동연구] 이주민 건강권 실태와 의료보장제도 개선방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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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6월 7일, 보건복지부는 ‘외국인 및 재외국민 건강보험제도 개선방안’을 발표하였다. 이어서 2018년에서 2019년에 걸쳐 일련의 건강보험제도 개정을 단행하였다.

보건복지부는 제도 개정의 이유를 “외국인·재외국민이 건강보험 보장이 필요한 경우에만 지역가입자로 임의가입하여 고액의 진료를 받고 출국하는 등 우리나라 건강보험제도를 악용하는 문제를 개선”하려는 것, “국민에 대한 역차별” 해소와 “도덕적 해이”를 방지하기 위한 것이라고 하였다. 그런 만큼 제도 개정의 내용은 징벌적 성격이 강했고, 더 많은 보험료와 더 적은 급여를 목적으로 한 것이었다.

건강보험 가입자격이 있는 이주민의 건강보험 지역가입이 의무화되었다. 지역가입자격 취득 시점은 입국 후 3개월에서 6개월로 연장되었다. 전년도 평균보험료 이상 지역보험료를 내야 하는 체류자격 범위는 확대되었다. 지역가입 세대 합가 범위는 배우자와 19세 미만 자녀로 축소되었고, 가족을 피부양자나 세대원으로 등록하기 위한 서류요건은 엄격해졌다.

지역보험료는 선납하도록 하고, 보험료 체납 직후부터 완납 시까지 급여를 받을 수 없도록 했다. 또한 보험료를 체납하면 체류자격 연장 불허라는 이주민에게 치명적인 징벌을 추가했다. 대신 취약계층 보험료 감면제도는 이주민에게 적용되지 않으며, 일부 체류자격에 따른 감면제도만이 유지되었다.

제도 개정의 효과는 이주민 저소득층이 감당할 수 없는 건강보험료 부담으로 먼저 나타났다.

취약계층 이주민은 고액의 보험료와 체류자격 사이에서 진퇴양난에 빠지게 되었다. 코로나19 팬데믹은 이러한 상황을 더욱 악화시켰다.

이주민들은 제 때 보험료를 납부하지 못해 급여 제한 상태에 있다가 체류연장 시점이 닥치면 어떻게든 돈을 마련해 보험료를 납부하고 체류연장을 한 후 다시 보험료를 체납했다. 결국 보험료는 보험료대로 내면서 지속적으로 급여 제한 상태에 있게 되는 악순환에 내몰리고 있는 것이다. 체류 연장이 시급한 상황에서 당장 끼니를 이어가기 어렵거나 주거가 없이 노숙하던 이주민이 지원단체로부터 생계지원금을 받아 건강보험료부터 납부하는 사례들도 나타나고 있다.

“두 아이를 혼자 키우는 싱글맘으로서, 수입이 0원일 때 건강보험료를 내야하는 것은 정말 어려운 일이다. 어떤 때는 건강보험료를 내기 위해 돈을 모으려고 아이들과 나를 위한 식료품을 사지 못할 때도 있다. 그렇지만 체류자격을 잃지 않기 위해서 나는 매달 25일까지 건강보험료를 내기 위한 돈을 마련해 놓아야 한다. 당신들은 그런 상황을 상상이나 할 수 있는가! 그런데 그렇게 건강보험료를 내고도 나는 내 위가 왜 아픈지 알아보기 위한 검사를 할 수 없다. 돈이 없기 때문에!” (38세 탄자니아 국적 인도적 체류허가자(G-1-6) 여성, 보고서 p.155)

명색이 건강의 보장이 목적인 건강보험이 이주민의 건강권을 넘어 생계와 체류를 위협하고 있는 것이다.

체류 연장을 위해 어떻게든 돈을 마련해 체납 보험료를 냈지만 다시 보험료를 체납해 줄곧 급여를 받지 못하는 상태로 아파도 치료받지 못하는 이주민들이 늘어나고 있다. 끝내 밀린 보험료를 내지 못해 체류연장을 하지 못한 사례도 있다. 체류기간이 만료되었지만 출국을 할 수 없어서 출국유예를 받거나 임시 체류자격을 받은 이주민들이 오랜 기간 건강보험료를 납부해 왔는데도 필요할 때 그 혜택을 누리지 못하는 문제도 제기되고 있다.

2018년 6월, 보건복지부가 건강보험제도 개정을 예고한 직후부터 이주민 인권단체들은 ‘이주민 건강보험제도 차별 폐지를 위한 공동행동’을 구성해 활동해 왔다. 이 모임에는 이주노동자, 재외동포, 난민 인권단체 등이 두루 참여하였고, 보건복지부에 공동질의서를 보내고, 토론회와 항의 기자회견을 개최하고, 법령 개정 공포 시점마다 제도 개정의 악영향에 대해 의견을 제출하고, 헌법소원을 제기하는 등 가능한 모든 경로를 통해 제도 개정에 대한 반대 의견을 표명했다. 그러나 역부족이었다.

국적과 체류자격에 따른 차별을 당연시하는 분위기는 한국사회에 널리 퍼져 있다. 언론은 외국인 건강보험 “먹튀”, “무임승차”, “부정수급”을 언급한 보도를 쏟아냈다. 이는 한편으로 직접적으로 제노포비아를 확산시켰고, 제노포비아의 확산은 다시 역으로 의료보장에서 이주민 차별을 강화하는 제도 개악의 디딤돌이 되었다. 정치인들은 이에 침묵하거나 이를 적극 활용했다.

건강보험제도에서 이주민 차별은 건강권이란 무엇인가?, 라는 원론적 질문을 제기한다. 건강권이란 무엇인가? 생명과 직결되는 인간의 기본권인가? 먹고 튈 수 있는 하나의 상품일 뿐인가?

이 연구는 건강권은 인간의 기본권이라는 입장을 견지하며, 이주민의 건강권 실태를 밝히고 이를 위협하는 제도적‧구조적 요인을 분석하여 그 개선방안을 제시하였다.

이를 위해 국내 법제 및 정책에 대한 연구와 함께 이주민 1,060명 설문조사, 관계기관 및 관계자, 이주민 당사자와 지원단체 활동가에 대한 면접조사를 실시하였고, 의료보장제도, 특히 건강보험제도에서 차별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이주민의 다양한 사례를 제시하였다. 각각 다른 의료보험제도를 가지고 있는 독일, 영국, 일본, 대만의 사례도 비교 검토하였다.

이 연구보고서가 이주민과 함께 건강한 삶을 누리기를 바라는 사람들의 활동에 작은 힘이라도 보탤 수 있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