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권 등 신분증 압류’는 인신매매이자 범죄행위

바다에 붙잡힌 선원이주노동자 이야기

발행일 : 2020년 11월
발행처 : 선원이주노동자 인권네트워크

선원이주노동자 인권네트워크는 매월 해양수산부 장관을 비롯한 지방해양수산청 근로감독관, 수협 관계자 등에게 ‘바다에 붙잡힌 선원이주노동자 이야기’를 편지로 보냅니다. 한국 어선에서 일하는 이주노동자는 외국인선원, 외국인어선원, 이주어선원, 선원이주노동자, 어업이주노동자 등 다양하게 불리우고 있습니다. 여기서는 ‘선원이주노동자’로 통일해 사용하자고 합니다. ‘선원이주노동자’는 어디에서 일하는가에 따라 근거법률 등이 다르게 적용되는데, ①원양어선 ②20톤이상 연근해어선 ③20톤미만 연근해어선의 3종류로 구분됩니다. ‘선원이주노동자 이야기’는 이 3곳에서 일하는 이주노동자들의 문제를 매월 1회, 하나의 주제씩 다루어 나갈 것입니다.

1. 여권 등 신분증 압류를 금지하는 선원법 개정안 발의….

이번 정기국회에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 소속 이원택 의원(더불어민주당, 김제・부안)이 2020년 11월 12일자로 대표 발의한 ‘선원법’ 개정안이 발의되어 계류중이다. 개정안중 눈길을 끄는 것이 있다. ‘선박소유자의 여권 등 신분증 압류를 금지’한다는 제50조의2 신설 조항이다. 선원법 개정안이니 선원법의 적용을 받는 20톤이상 연근해어업 선원이주노동자(E-10-2)들이 대상이다.

여권 등 신분증 압류는 20톤이상 연근해어업 선원이주노동자(E-10-2)만의 문제는 아니다. 취약 이주노동자층인 E-9-4(고용허가제 어업), E-6(예술흥행), E-7(특정활동), D-4(일반연수) 등에서도 광범위하게 나타나고 있다.

개정안 제안이유로는 “최근 외국인 선원들이 여권 등을 압수당하는 등 인권침해를 받고 있다는 지적이 지속 제기됨에 따라 외국인 선원의 기본적인 권리보장이 필요”하기 때문이라고 하고 있다. 그 내용을 보자.

<신설> 선원법 제50조의2 【여권 등 대리보관 금지】 선박소유자는 선원의 여권 등 신분증을 대리하여 보관해서는 아니된다. [벌칙 : 제179조. 200만원 이하의 과태료]

이런 내용의 법안이 21세기가 시작되고 20년이나 지난 2020년도에 발의됐다는 것 자체가 우리를 부끄럽게 한다. 도대체 여권 등 신분증 압류행위가 얼마나 자행되고 있기에 이런 법안까지 발의될 지경에 이르렀단 말인가?

사실 20톤이상 연근해어업 선원이주노동자(E-10-2)들에 대한 여권 등 신분증 압류 행위는 ‘최근’의 일이 아니다. 1990년대 산업연수제 하에서부터 시작해 2007년 외국인선원제가 실시되고 나서도 지속적으로 자행되어 온 행위이다. 다시한번 20톤이상 연근해어업 선원이주노동자(E-10-2) 실태조사를 실시한 2012년 국가인권위원회의 연구용역 조사결과를 보자.

[표] 본인의 여권이나 외국인등록증 보유 여부 (n=169)

 여권과 외국인등록증 모두 가지고 있음여권만 가지고 있음외국인등록증만 가지고 있음여권과 외국인등록증 모두 가지고 있지 않음
빈도3514786169
(%)20.70.627.850.9100.0
‘어업이주노동자 인권상황 실태조사’중에서, [오경석 외(2012. 10월). 국가인권위원회]

169명의 응답자중, ▲여권이나 외국인등록증을 모두 가지고 있지 않다는 응답은 86명으로 50.9%, ▲외국인등록증만 본인이 가지고 있다는 응답은 47명으로 27.8%, ▲여권만 본인이 가지고 있다는 응답은 1명 있었다. 설문에 응답한 선원이주노동자의 약 80%가 신분증을 본인이 가지고 있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심각한 상황이었다. 문제는 2012년 이후 8년이 지난 현재까지도 거의 개선되지 않은채 지속되고 있다는 것이다.

여권 등 신분증 압류는 ‘이탈을 방지’하기 위한 목적에서 행해져 온 고전적인 수법이다. 이탈율이 심한 20톤이상 연근해어업 선원이주노동자(E-10-2)들에게도 예외일리 없다. 이탈을 방지한다는 이름하에 ▲수백만원에 달하는 이탈보증금, ▲집문서・땅문서 압류, ▲보증인 연대책임 부여로도 모자라, ▲여권・외국인등록증・통장까지 압류하는 2중・3중・4중의 이탈방지대책이 자행되어 오고 있다.

2. 국제사회에서는….

국제사회에서는 여권 등 신분증 압류행위는 대표적인 인권침해 행위이자 인신매매로 규정하고 오래전부터 금지 및 규제를 촉구해 왔다.

1990: UN 이주노동자 권리협약

UN 모든 이주노동자와 그 가족의 권리보호에 관한 국제협약 (1990. 12. 18.)제21조 법률에 의하여 정식으로 권한을 부여받은 공무원 이외의 자가 신분증명서, 입국, 체류, 거주 또는 정착을 허가하는 서류 또는 취업허가증을 압수, 파기 또는 파기하려 함은 위법이다….

2000: UN 인신매매방지 의정서 (팔레르모 의정서)

인신매매, 특히 여성과 아동의 인신매매 방지, 억제 및 처벌을 위한 의정서 (2000. 11. 15.)제3조 용어의 사용 : 이 의정서의 목적상, 가. “인신매매”란 착취를 목적으로 위협이나 무력의 행사 또는 그 밖의 형태의 강박, 납치, 사기, 기만, 권력의 남용이나 취약한 지위의 악용, 또는 타인에 대한 통제력을 가진 사람의 동의를 얻기 위한 보수나 이익의 제공이나 수령에 의하여 사람을 모집, 운송, 이송, 은닉 또는 인수하는 것을 말한다. 착취는 최소한, 타인에 대한 매춘의 착취나 그 밖의 형태의 성적 착취, 강제노동이나 강제고용, 노예제도나 그와 유사한 관행, 예속 또는 장기의 적출을 포함한다.

2017: UN 사회권위원회 권고

UN 경제적사회적 및 문화적 권리 위원회 4차 최종견해 (2017. 10. 06.)이주노동자37. 위원회는…. 이주노동자들에 대한 여권 압수 관행을 예방하고, 착취와 사실상 구금과 신체적인 학대에 관한 보고에 대해 조사하고, 가해자를 처벌하는 것을 포함해, 어업과 농업 분야에서 이주노동자들의 노동 및 사회보장 권리가 확실히 보호되고 존중되게 할 것을 당사국에 촉구한다. 위원회는 당사국이 ILO 강제노동협약 제29호와 강제노동폐지협약 제105호를 비준할 것을 권한다.

3. 여권 등 신분증 압류를 조장해온 해양수산부….

굳이 국제규범을 거론하지 않더라도, 여권 등 신분증 압류행위는 국내법으로도 충분히 규제가 가능한 것이었다.

선원법

선원법 252 강제 근로의 금지 선박소유자 및 선원은 폭행, 협박, 감금, 그 밖의 정신상 또는 신체상의 자유를 부당하게 구속하는 수단으로써 선원의 자유의사에 어긋나는 근로를 강요하지 못한다.

출입국관리법

출입국관리법 27여권 등의 휴대 및 제시 ① 대한민국에 체류하는 외국인은 항상 여권・선원신분증명서・외국인입국허가서・외국인등록증 또는 상륙허가서(이하 “여권등”이라 한다)를 지니고 있어야 한다….   출입국관리법 33조의2 외국인등록증 등의 채무이행 확보수단 제공 등의 금지누구든지 다음 각 호의 어느 하나에 해당하는 행위를 하여서는 아니된다.1. 외국인의 여권이나 외국인등록증을 취업에 따른 계약 또는 채무이행의 확보수단으로 제공받거나 그 제공을 강요 또는 알선하는 행위

여권법

여권법 16여권의 부정한 발급행사 등의 금지누구든지 다음 각 호에 해당하는 행위를 하여서는 아니 된다.5. 채무이행의 담보로 여권을 제공하거나 제공받는 행위

형법

형법 329절도 타인의 재물을 절취한 자는 6년 이하의 징역 또는 1천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

학설과 판례에서는 ‘재물’에 대해 반드시 경제적 가치가 있어야만 하는 것은 아니고, 주민등록증 등도 절도죄의 재물이 된다고 하고 있다. 이주노동자의 경우 여권, 외국인등록증이 여기에 해당됨은 당연하다 하겠다.

그러나 20톤이상 연근해어업 선원이주노동자(E-10-2)들에 대한 여권 등 신분증 압류행위를 규제할 수 없는 일이 발생했다. 바로 2013년 7월 해양수산부에서 발표한 ‘연근해어선 승선 외국인선원 근로여건 개선 대책’이 그것이다. 해양수산부에서는 대책의 주요내용에서 “외국인선원들의 이탈방지 등의 목적으로 한 임금의 체불, 선주의 통장・여권 관리 등 선주의 부당한 행위에 대한 선원근로감독을 강화하여 지속적으로 단속한다”고 밝혔다. 해양수산부에서도 그 실상을 잘 알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이어진 개선대책에서 “여권・외국인등록증을 본인이 관리토록 유도”한다고 했지만, 여기에 “본인의 동의(동의서 징구)에 따라 별도로 관리하는 것은 예외”로 한다는 단서조항을 추가해 버렸다.

[표] ‘연근해어선 외국인선원 근로개선 대책 주요내용’ (해양수산부, 2013. 7. 23)

현 실 태개 선 방 안
6. 외국인 선원의 인권문제 등- 이탈방지 목적으로 여권 또는 외국인등록증을 선주, 단위수협 등이 관리– 여권, 외국인등록증을 본인이 관리토록 유도※ 본인의 동의(동의서 징구)에 따라 별도로 관리하는 것은 예외로 함

이 대책 발표이후 한국에 들어오는 선원이주노동자들은 모두 “분실・훼손을 방지하기 위해… 출입국 신고 등의 업무를 위해…” 여권외국인등록증통장의 보관(=압류)에 동의한다는 동의서에 서명을 해야만 했다.

결국, 이 대책은 선박소유자들이 합법적으로 여권 등 신분증을 압류할 수 있게끔 하는 대책아닌 대책이 되어 버렸다. 정부(해양수산부)가 앞장서서 여권 등 신분증 압류행위에 대한 그동안의 묵인・방조를 넘어 아예 면죄부를 준 꼴이었다. 이 때문에 여권 등 신분증 압류행위는 현재까지도 광범위하게 지속되어 왔다.

4. 부끄러운 범죄행위 끝내야….

이탈보증금을 책정하지 않으면… 여권 등 신분증을 압류하지 않으면… 유지될 수 없는 제도가 과연 정상적인 제도인가 묻지 않을 수 없다.

앞서 언급한 ‘인신매매 방지 의정서(팔레르모 의정서)’를 한국은 2015년 비준하였다. 비준 3주년을 맞은 2018년 국가인권위원회에서는 ‘인신매매 방지 안내서’를 발간하였다. 이 안내서에는 “여권・신분증 같은 신분증명서류를 본인이 소지하지 않고 있는 경우”를 인신매매로 규정하면서, 인신매매는 인간의 권리를 박탈하고, 그들의 꿈을 짓밟으며, 생명의 존엄성을 파괴하며 우리 모두를 부끄럽게 하는 범죄임을 분명히 하고 있다.

여권 등 신분증 압류를 금지하는 선원법 개정안과 별개로 이제 이 부끄러운 범죄행위를 끝내야 하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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