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동성명] 그 글은 기사가 아니다. 부끄러운 혐오표현을 멈춰라.

조선일보는 지난 9월 13일 <“X한민국, 도끼 들자”…재난지원금 못 받은 조선족 반응> 이라는 제목의 기사를 보도했다. 기사 제목부터 대한민국 발행부수 1위라는 신문의 수준과 품격에 전혀 어울리지 않지만 기록을 위해 그대로 옮겨둔다. 내용은 더욱 민망하다. 어딘지 알 수도 없는 한 인터넷 게시판에서 누군지 알 수 없는 사람들이 익명으로 주고받고 있는 아무말을 중요한 취재원의 제보인 것처럼 귀한 지면에 고스란히 담아 주었다.

기자는 재난지원금을 받지 못한 사람들이 온라인에서 표출한 ‘거친 욕설과 불만’이 사회적으로 위험하다고 생각했는지 언론인이 지켜야 할 기본적인 팩트체크나 취재윤리는 버려둔 채 추가취재도 없이 단신으로 서둘러 보도했다. 그런데 기사에 언급된 표현의 수준만 보면 재난지원금을 받지 못한 한국 사람들이 인터넷 게시판에 표출한 분노에 비하면 점잖은 수준이며, 이 기사의 댓글에 남겨진 수많은 혐오표현과는 차마 견주기가 민망할 정도다.

현상을 취재하면 원인을 분석하는 것이 기본인데, 지원금을 받지 못한 이주민의 불만은 여과 없이 전하면서 그 원인인 재난지원금 차별지급의 문제점에 대해서는 침묵한다. 조금만 찾아보면 쉽게 알 수 있는 사실들, 예를 들어 미국, 일본, 독일, 캐나다 등 많은 선진국에서 장기거주 외국인에게 정부지원금을 지급하고 있다거나, 작년 국가인권위원회에서 외국인 주민에게 재난지원금을 배제하는 것은 부당한 차별이라고 판단한 사실 등은 기사에 없다. 코로나 재난 상황에서 외국인 주민의 일상에 대해서도 취재하지 않았다. 경기 부양을 위해서 소비할 수 있는 사람이라면 국적을 떠나서 지급하는 것이 재난지원금의 본래 목적에 부합하다는 전문가들의 의견보다 누군지 알 수도 없는 혐오댓글이 보도할 가치가 있는지 의문이다. 이 정도면 오로지 ‘외국인에 불과한 조선족들이 감히 정부 정책에 대해 불만을 가지고 있다’는 차별적이고 혐오적인 감정만 그대로 전하고 있을 뿐이다. 혹시 이것이 기사의 의도라면, 그건 결코 기사로 부를 수 없다. 밖으로 꺼내놓기 부끄러운 혐오표현일 뿐이다.

언론인들이 스스로 선언한 취재윤리에도 어긋난다. 한국기자협회를 포함한 9개 미디어 종사자 단체와 소속 회원들은 지난 2020년 1월 ‘혐오표현 반대 미디어 실천 선언’을 했다. 선언문에서 기자들은 “혐오표현의 개념과 맥락, 해악을 충분히 인식하고, 다양한 사회현상과 발언 등에 혐오표현이 있는지 주의 깊게 살펴보고 전달하겠다”고 했다. 특히, 경제적 불황, 재난 등이 발생하였을 때 혐오표현이 많이 발생한다는 점을 이해하고, 인권의 측면에서 더욱 면밀하게 살피겠다고 선언했다. 언론인이라면 최소한 사회적 소수자들에게 부정적인 혐오와 적대감이 표출되는 현상 그 자체를 그대로 전달할 게 아니라, 그 배경과 맥락을 파악하고 인권의 관점에서 해석한 뒤 전달해야 한다고 기자들 스스로 약속했다. 약속대로 하면 된다.

재난은 국적과 인종을 가리지 않는다. 모든 사람이 오랫동안 힘든 시절을 견뎌내고 있다. 내가 너무 힘들어서 다른 사람들이 가지는 것이 마냥 좋아 보이지 않는 마음도 한편 이해된다. 그러나 근거 없는 분노와 적대는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사회적 연대가 어려운 재난의 시기에 소수자에 대한 배제와 혐오는 늘 사용되어온 쉬운 출구전략이었다. 당장은 외국인을 배제하는 것이 쉽지만, 이러한 차별과 혐오가 사회에 용인되기 시작하면 그 자리는 언제든 힘없는 다른 사람으로 바뀔 수 있다. 사회를 병들게 만들고, 더 큰 폭력을 낳게 될 것이다. 힘들수록 쉬운 길을 찾기보다, 지혜를 모아 올바른 길을 찾아내는 것이 언론인의 사명이다. 우리는 코로나 재난을 극복하기 위해 소수자를 배제하고 차별하는 쉬운 길 보다, 어느 한 사람도 배제되지 않고 평화롭게 공존할 수 있는 조심스럽고 낯선 길을 함께 걸어가자고 제안한다. 당장은 조금 불편하게 느껴지더라도, 결국은 그 길이 비온 뒤 굳은 땅처럼 우리 사회를 더 단단하게 만들 것이라 믿는다. 모든 언론인에게 이주민에 대한 부끄러운 혐오표현, 증오와 폭력의 선동을 멈추고 평화와 공존을 위한 성찰에 동참하여 줄 것을 호소한다.

  1. 9. 17.

공익법센터 어필, 국제이주문화연구소, 두레방,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국제연대위원회, 사단법인 선, 아시아의 창, 아시아 평화를 향한 이주 MAP, (사)오픈넷, (사)올 젠더와 법 연구소, 원곡법률사무소, 장애인권법센터, (사) 이주민지원공익센터 감동, 이주민센터 친구, 한국이주여성인권센터, 이주노동자평등연대(건강권 실현을 위한 보건의료단체연합 (건강권 실현을 위한 행동하는 간호사회, 건강사회를 위한 약사회, 건강사회를 위한 치과의사회, 노동건강연대,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 참의료실현청년한의사회) , 노동당, 노동사회과학연구소, 노동전선, 녹색당, 대한불교조계종사회노동위원회, 성공회 용산나눔의집, 민변노동위원회, 사회변혁노동자당, 사회진보연대, 이주노동자노동조합(MTU), (사)이주노동희망센터, 이주노동자운동후원회, 이주민방송(MWTV), 이주민센터 친구,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전국불안정노동철폐연대, 전국학생행진, 지구인의정류장, 필리핀공동체카사마코)